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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민족을 살린 평양 대부흥 이야기(18)
박용규 교수/총신대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소장
편집부   |   2020-07-10
▲ 박용규 교수     ©편집부

1904년 11월 예정대로 하디는 안식년을 떠납니다. 그가 안식년을 떠난 후에도 1905년 신년들어 성령의 역사가 남감리교 선교구 개성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이 같은 역사가 1905년 하디가 없는 가운데서도 한국교회에 일어나는 것을 목도한 4개의 장로교 선교회와 2개의 감리교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그해 가을 복음주의선교회연합공의회를 결성하고, 그 자리에 모여 신년 부흥회를 전국적으로 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부흥운동의 움직임을 목도하면서 선교사들은 영적각성운동이 이 민족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부흥운동을 전국에 확산시키기 위해 1906년 1월 신년부흥회를 전국적으로 갖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장감연합공회 결성 때 참여한 선교사들은 한국교회가 일차적으로 추진할 것이 불신자들을 전도해 교회로 끌고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를 믿는 기성신자들이 성령의 충만, 영적각성을 경험하는 것임을 간파하고 이 일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새 신자 전도에 앞서 기성신자들이 먼저 영적으로 각성하는 일이 선행될 때 한국교회가 참된 부흥을 경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기성신자들이 먼저 은혜를 받아야 전도가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참으로 정확한 진단이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영적으로 깨어야 됩니다. 기성 신자들과 교역자들이 먼저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영적으로 깨어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흥운동의 발흥과 확산 과정에서 은혜를 받은 지도자를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미국의 일차 대각성 운동, 이차 대각성 운동, 무디 부흥운동도 다 마찬가지로 교회 지도자들, 신학생들, 목회자들이 먼저 깨어났습니다. 웨일즈 부흥운동 때 신학생이었던 이반 로버츠가 먼저 은혜를 경험했고, 원산부흥운동에서는 하디가 그리고 평양대부흥운동 때는 이길함 선교사와 길선주 장로가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교역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먼저 큰 은혜를 받았고 이들을 통해 부흥운동이 저변 확대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은혜를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깨어나 복음을 전할 때 교회가 영적으로 깨어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기성교회 신자들이 먼저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한다는 1905년 가을 복음주의연합공의회의 결정은 돌이켜 볼 때 시의 적절한 결정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시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한국의 주권이 상실된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주권 잃은 슬픔 속에서 민족적 위기를 비분으로 쓸어안아야 했고, 선교사들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야했습니다. 블레어가 증언한대로 “많은 한국인들은 교회를 한국의 유일한 희망으로 보았습니다.” 이 시대 한국인들과 선교사들은 이 민족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영적대각성운동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한대로 1906년 신년부흥회 때 놀라운 영적인 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06년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신년 부흥회가 열리기 직전 1905년 12월에 하디가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시 하디를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릭워렌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목적을 이끄는 삶을 살면 주변 환경에도 개입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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