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한국교회와 민족을 살린 평양 대부흥 이야기(17)
박용규 교수/총신대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소장
편집부   |   2020-06-26
▲ 박용규 교수     ©편집부

얼마나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으면 집회에 대한 기억이 “우리가 살아있는 한 일생동안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을까 상상이 갑니다. 그만큼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임했음을 말해줍니다. 원산에서 일어났던 그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자기에게 실패감을 안겨주었던 강원도 금화군 지경대에서도 똑같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디는 지경대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금식 후 건강을 회복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시는 대로 이끌려 간 것입니다. 하디는 성령의 손에 이끌려 송도의 남감리교 집회, 서울에서의 집회를 계속해서 인도합니다. 똑같은 성령의 역사가 그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후 하디를 통해 부흥운동이 서서히 확대되어 1904년 6월에 들어 비로소 ‘부흥회’라는 말이 한국에서 일반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부흥회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였습니다. 하나는 이미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신앙을 갱신하거나 신앙을 다시 회복한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자들이 이 기회를 통해서 주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부흥회는 그런 면에서 기성 신자들이나 처음 교회에 찾아온 초신자들 모두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수단이었습니다. 

 

3. 계속 타오르는 원산부흥운동의 불길 

하디의 부흥회가 계속되면서 부흥운동이 저변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11월 안식년을 계획하고 있던 하디는 안식년을 떠나기 전 서울, 평양, 제물포 세 군데에서 집회를 계획합니다. 이들 집회 때 여러 사람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1년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았던 하디가 안식년을 계획한 것은 무리한 집회일정으로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기

뒤로가기 홈으로

인기뉴스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기독타임즈.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