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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18) 255호
황승기 목사 / 대전남부교회 원로목사
편집부   |   2022-08-01
▲ 황승기 목사/대전남부교회 원로목사     © 편집부

인류 역사상 수많은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처형 현장에도 세 개의 십자가가 있었고, 주님의 십자가는 두 강도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이는 수치심을 더하게 하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사형 도구로 저주의 표상이었습니다(갈 3:13). 그러므로 로마 시민이나 일반 사형수에게는 십자가형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비천한 노예나 흉악범에 한하여 십자가형이 가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십자가를 강조하고 자랑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바울 사도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주께서 달리셨던 십자가 형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집자가에 못 박히신 것, 즉 예수님의 죽으심만 알기로 작정했다는 말입니다.

 

자칫 우리가 십자가 형틀을 우상화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창궐하자 2020년 3월 15일 프란체스코 교황이 로마 시내의 산타 마르첼로 알 코소로 성당에 보관된 십자가상을 찾아가 재난이 종식되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십자가는 1522년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할 때, 많은 천주교도가 바라보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천주교는 십자가를 우상화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다수가 죽었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 끝에 달고 “놋뱀을 바라보면 살리라”고 선포했더니 순종하고 바라본 자는 다 살았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놋뱀을 소중히 여겨 보관하고 섬겼습니다(왕하 18:4). 그러므로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할 때, 모세가 만든 놋뱀을 부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4절에 “그가 여러 신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수고”는 그가 깨뜨렸다, 그가 박살냈다는 뜻입니다. 놋뱀이 비록 죽어가는 백성을 살리는데 사용된 도구였지만, 그것을 우상화하면 안됐습니다(출 20:4-5).

 

주께서 달리셨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요, 표상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놋뱀이나, 십자가 형틀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뱀에게 물린 백성들을 살려주셨습니다. 놋뱀이 그들을 살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 형틀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구원했습니다(행 16:31, 요 3:16). 그래서 이 시간, 오늘 본문이 말하는 “십자가의 도”를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십자가의 도”라 할 때, “도”(로고스)는 말씀, 명령, 교훈, 가르침, 교리, 관하여 말한 것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도에 사용된 것은 단순한 ‘로고스’가 아니고, ‘호 로고스’입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가 말하고, 십자가가 보여주는 ‘그 말씀’, ‘그 교훈’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말씀하는 그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십자가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형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가 공의인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죄를 방관하거나 간과하거나 용납할 수 없습니다(신 32:4; 시 98:2; 슥9:9).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하마르티아)는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것, 목표에서 빗나간 것을 뜻합니다. 즉 죄는 하나님의 뜻에 빗나간 것 ,또는 미치지 못한 것, 즉 불순종하거나 순종함에 부족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창 2:17). 그런데 먹었습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선민들이 지키도록 여러 가지 규례와 규범들을 주셨습니다. 이것들을 지키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창 2:17).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습니다.

 

죽음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영적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을 에덴에서 추방하셨습니다(창 3:22-24).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죽음입니다.

 

둘째, 육체적 죽음입니다. 영과 육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0절에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가시니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입니다. 영과 육이 아울러 지옥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어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20장 14-15절에 “사망과 음부의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했습니다.

 

기독 신자가 “내 죄는 주님이 청산해주셨으니, 나는 죄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담 안에서 지은 죄 즉 원죄와 회개 이전에 내가 지은 자범죄는 주님께서 다 청산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회개 이후 우리가 매일 짓는 죄는 매일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0절에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죄 사함 받은 자라도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요, 어찌하다 부지불식간에 짓는 죄는 바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엄한 징계를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했고, 이사야 1장 5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했고, 이어서 8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죄인의 준엄한 심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출 18:21; 신 7:26). 

 

2.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가 사랑입니다(요일 4:8). 하나님의 이 사랑이 죄인에게 살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대속법입니다. 율법 아래서 죄인이 용서받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 대속법입니다. 대속이란 죄 없는 자가 죄인의 죗값을 대신 치르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속죄의 제사였습니다(레 4:14).

 

다시 말해 율법시대에는 무죄한 짐승이 죄인을 대신하여 희생됨으로 죄인이 용서받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했습니다(레 4:20). 바로 그 구약의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즉 모형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율법으로 드리는 제물은 그림자요,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도가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는데,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9절에 “그러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약속하신 자손이 누구십니까?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이 약속들은 하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속죄제는 약속어음과 같고,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는 현금과 같습니다. 그래서 흠도 점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벧전 1:19) 허물과 죄로 죽은(창 2:17; 엡 2:1)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구약의 속죄 제물과 같이 자신을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 우리를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벧전 3:18). 구약의 제사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완성되었으므로, 주님께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요 19:30; 갈 3:16,19).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감격스러워 했습니다(사 53:5).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속량이란 ‘값을 지불하고 사서 선량한 시민이 되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이 지극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롬 5:7-8). 

 

3. 십자가는 신비한 구원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한 하나님의 능력은 구원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요한복음 3장 14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민수기 21장 4절 이하를 보면 백성이 길로 인해 마음이 상해 애굽에서 나오게 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5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셔서 백성들을 물게 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6절). 그러자 백성이 모세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고 중보의 기도를 부탁했습니다(7절).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해 기도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고, 뱀에게 물린 사람 중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모두 살았습니다(8-9절). 이것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바로 이 놋뱀처럼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겠다는 것입니다(요 3:14).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놋뱀을 바라봄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요 3:16; 행 16:32). 이것이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요 5:24). 예수님의 십자가는 신비한 구원의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4. 십자가는 주님이 죽으신 최종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최종 목적이 무엇입니까? 많은 설교자나 교인들이 ‘죄인 구원’이라고 대답합니다. 전혀 틀린 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50점짜리 답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최종 목적은 한 걸음 더 나가 구원 받은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1) 선한 일을 열심히 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했고, 디도서 2장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사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선한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6절에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심이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고, 이사야 43장 21절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2절에는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바라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수치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광거리가 되거야 합니다. 창조와 구원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찬송이 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결론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죄인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과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그리고 믿는 자를 구원하는 신비한 능력과 구원받은자의 사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징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계 3:19; 눅 12:47), 죄를 두려워하며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사 1:5).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에 감복하고, 주님의 구원의 능력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선한 일에 힘써 하나님의 찬송거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 설교는 대전남부교회 황승기 원로목사님께서 7월 28일 출판하신 '십자가의 도' 설교집에서 발췌한 주제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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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이사장=안승철 감독 ㅣ사장= 장원옥 목사 ㅣ 편집국장=오종영 목사 ㅣ 본부장 이승주 기자 ㅣ 충청본부장=임명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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