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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막 2:1-12) 149호
이기복 감독/하늘문감리교회
편집국   |   2017-08-07
▲ 이기복 감독 ▲하늘문교회     ©편집국
지난 주일은 “불행한 운명을 극복하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친구들의 적극적인 사랑과 믿음으로 불치의 병에서 치유 받고 구원을 받아 기적의 주인공이 된 중풍환자의 기적에 대한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에서 일어난 기적입니다. 본문 1절에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가버나움이란 말은 “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갈릴리 서북쪽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 예수님의 공생에 초기 사역지로 전도와 병 고치는 치유 사역을 많이 하신 곳입니다. 그래서 가버나움을 일명 “본 동네”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곳은 세관이 있어서 세리였던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곳이요, 예수님께서 백부장 하인의 병을 고쳐 주셨으며,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시기도 했고,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어느 집에 오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라고 말씀했습니다. 옛날 번역에는 “용신할 수 없다”고했습니다. 즉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빈틈이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는 표현입니다.

그 때 네 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는 친구를 들것에 메고 그 곳에 왔습니다. 3절에 보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 꽉 찬 사람들로 인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조차 뵐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큰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들은 환자를 데리고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앉아 계신 방의 지붕을 뜯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뜯어낸 구멍으로 중풍환자를 끈으로 달아 내린 것입니다. 일반인들 아무도 생각지 못하고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사람의 그 행위와 믿음을 보시고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11절에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령을 하셨으며, 또한 12절에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말하길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예수님도 감탄하시고 칭찬하셨으며 그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네 명 친구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예수님께로 나오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중풍병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친구를 살리는 방법을 생각하고 서로 의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 당시로써는 백약이 무효였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보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환자치고 갖가지 방법을 써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네 명의 친구들은 아마도 마지막 수단으로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면 낫겠다는 믿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가족이나 친척도 아닌데 병든 친구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간다고 하는 것은 여간한 우정과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들은 병든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면 분명히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야 어디 들것에 병든 친구를 데리고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친구가 아프다고 하면 한 번 찾아가서 위로하거나 믿는 사람이라면 기도해 주고, 과일이나 음료수를 사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필요한 데 쓰라고 봉투를 전해 주면 대개는 그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 중에도 친구를 직접 데리고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 가족인데도 방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 예수를 구주로 믿고 만병의 의사로 믿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중풍환자의 친구들은 예수님에게 나가면 낫겠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네 명이 들 것에 메고 예수님이 계신 가버나움에 찾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2. 적극적인 믿음과 사랑의 실천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적의 주역은 네 명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은 환자가 자기를 메고 온 상을 들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나 병자를 고치실 때 언제나 “네가 나을 줄 믿느냐?”고 물으시고 믿음을 고백할 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당사자의 믿음이 제일 중요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기적을 주시고 병자를 고쳐 주기도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의 네 명의 친구들의 하나 된 믿음은 친구의 병을 고치는 능력이 된 것입니다. 믿음도 각자 개인의 믿음이 중요하지만 서로 하나가 되어 협력하는 믿음은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발휘합니다.

네 친구의 적극적인 믿음과 사랑의 실천이 평생을 중풍병으로 앓다가 죽을 친구를 구원하여 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지 않고 율법이나 논하고 남의 죄나 들추어내는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병 고침에 대하여 비난만 하였습니다. 본문에도 서기관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선포”한 것에 대하여 신성모독을 했다고 비난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지 않고 비난이나 하고 불평이나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습니다.
 
3.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는 용기와 믿음입니다.
네 명의 친구들은 중풍으로 고생하는 친구를 들 것에 메고 먼 곳에서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의 예수님이 계신 집에까지 데리고 온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네 명의 친구들이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만 반대하여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렵게 왔지만 와보니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용신할 수도 없는 곳에서 들것에 누운 환자를 방 안에 계신 예수님에게 인도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세상 사람들 못지않게 자기밖에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방에 계신데 중풍환자에게 길을 내 주겠습니까? 오히려 비난이나 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면 자리가 넉넉한데도 자기 앉은 자리 하나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늦게 온 사람이 그렇지 않아도 미안한데 얼른 자리를 양보해 주면서 함께 예배를 드린다면 얼마나 은혜스럽겠습니까? 우리도 좀 더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환경을 보아서는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들은 그냥 포기하지 않고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누가 감히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네 명의 친구들은 지붕에 올라가 예수님이 계신 방에 지붕을 뜯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적극성, 이러한 열정, 이러한 용기,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결국 지붕에 구멍을 내고 환자가 누운 상에 끈을 묶어 환자를 달아 내리기 시작을 하여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신 예수님께서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들의 행위와 믿음과 사랑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죄 사함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I tell you, get up, take your mat and go home” 그러자 그 환자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걸어 나갔습니다. 할렐루야!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본문 12절에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러 일은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We have never seen anything like this. 불치의 병자가 낫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인들이나 서기관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예수님을 책잡고 비난하는 일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그러나 거기 모인 군중들은 다 놀라서 이런 일은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고 감탄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고 각종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생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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